
30대 중반이 되고 서울을 벗어나면서 대부분과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사실 같은 직군 안에 없으면 연락이 끊긴다.
같은 경제력, 같은 지역이 아니면 서서히 멀어지는 것 같다.
30대 초중반은 이상한 나이다.
어떤 친구는 놀고 있고, 어떤 친구는 딸을 낳았고, 나는 그냥 살아만 있다.
오늘은 그냥 친구와 만났다.
학창시절의 이야기, 같이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빌려보던 이야기. 그런 추억을 생각하면서 갔다.
친구는 결혼도 했고 꽤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나는 일단 백수에 가까운 프리랜서이다.
친구는 자기 삶에 지쳐 있었다. 육아 스트레스도 있을 것이고, AI가 강요되는 성과에 지쳤지만, 나름 친구들 중에 프로그래밍을 잘 아는 나에서 물을 게 있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어려운 일은 전혀 아니었다. 어차피 요즘 엑셀 자동화야 예전처럼 파이썬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 컴퓨터에 Codex를 설치하고 대강의 엑셀 자동화를 해주니까 친구는 크게 기뻐했다.
친구와 이디야 커피에서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커뮤니티에 꽤 심취해 있었다. 거기에 중국인이 떠나야한다라거나, 외국인 건보료 문제나 그런 극우적인 음모론을 강하게 믿고 있었다. 나에게 커뮤니티를 보여주면서 이야기했다. 나는 커뮤니티에 기본적으로 자기 이득을 위해서 회사등이 여론을 주도하는 것을 알고 있고, 실제로 그것을 위한 프로그램을 납품한 바가 있기에 그냥 듣고만 있었다.
나는 삶에 지친 사람일 수록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일 수록, 개별 선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생기고, 그 무력감을 견디는 가장 싼 방법이 "거대한 것에 내 몸을 맡기는 것" 일 것이다.
친구는 그러한 상태였다. 결혼 생활도 지치고, 육아도 지친다고 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사실 따라갈 수가 없었다. 친구는 적당히 시사에 관심 있었고, 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그게 진짜 진실인가는 모르겠지만, 친구는 그걸 믿고 있었다.
친구는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좋은 직장을 얻었다. 나는 사업을 시작했고, 실패했고, 다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살아왔다.
그런데 어쩐지 오늘 만난 친구가 낯설었다. 그리고 그 낯섦이 친구의 변화 때문인지, 내 변화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그보다 가장 슬픈 것은 밤새한 게임 이야기와 눈 반짝이며 만화책 이야기를 하던 친구가 사라지고, 저런 커뮤니티의 언어로만 말하는 사람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공통 언어와 관심사가 사라져서 슬픈 것일까? 아니면 친구가 말하는 주장이 내가 혐오하던 그것이어서 슬픈 것일까.
20대 초중반까지는 서로가 통했다. 그 친구도 취업에 고민이 많던 청년이었다. 친구는 커뮤니티를 혐오했다. 거기는 백수들이 세상을 혐오한다고 했다. 나는 그 의견에 동의했지만, 커뮤니티에 심취했던 시기였다. 외모,열등감,실패를 피해서 군중에 숨었던 시기였다.
근데 그런 친구는 커뮤니티에 중독되어 있었고, 나는 커뮤니티를 나와 있었다.
그 친구도 나에게서 낯섦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 친구에게서 나는 여전히 학창 시절 함께 만화책을 읽던 친구였을까?
아니면 살이찌고, 온통 프로그래밍 이야기와 계약 이야기를 하는 낯선 사람이 되어있었을까.
그 친구에게 나는 낯선 사람일 것이다. 완전히 노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장을 열심히 다니는 것도 아니니까.
열심히 살았고, 다 실패했을 뿐이다. 연애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다이어트와 살도 빼고 고백했는데 차였고, 직장도 그렇고, 돈 모은 것도 사기를 당했다. 다 최선을 다 한 결과물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모태솔로와 직장에서 튕겨 나온 경험으로 인해서 프로그래머로써 더 많은 일을 하고 자율적으로 일을 찾아가면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한다. 만약 결혼했다면 안정감을 위해서도 이런 선택을 못했을 것이고, 직장에 다녔다면 여러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낯섦과 친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낯섦은 참 서글프다. 점점 혼자가 되어간다는 느낌을 항상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