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그래밍 인플루언서의
FOMO에서 살아남기
프로그래밍 인플루언서의 영상을 보고 불안해졌다는 이야기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 속도로 공부하라는 조언으로 끝내기 쉬운데, 틀린 말은 아니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누군가는 계속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을 모르면 개발자로서 끝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으니, 내가 왜 불안해하는지만큼이나 저 사람은 왜 내게 불안해할 이유를 계속 제공하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FOMO란 무엇인가?
Fear of Missing Out, 남들은 좋은 경험을 누리는데 나만 놓치고 있을 것 같은 불안이다. Przybylski 등의 연구는 이 불안과 사회적 연결, 미디어 이용 등의 관계를 다뤘는데, 개발자의 경력 불안을 직접 조사한 것은 아니므로 여기서는 그 개념을 기술 콘텐츠에 적용해 읽어보려 한다. 실제 업무에서 확인한 부족함보다 남들이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학습의 우선순위가 흔들리는 상황 말이다. 1
이는 소셜미디어의 특성과 결합하여 개발자를 괴롭힌다. 우리의 세상은 SNS와 유튜브로 연결되어 있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은 참여율(engagement)이 높은 콘텐츠를 우선 노출한다.
자극적인 제목, 극적인 주장, 공포를 유발하는 프레이밍이 클릭·시청·공유를 더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알고리즘은 인플루언서의 성취를 선별적으로 보여주는 "하이라이트 릴" 을 구성한다.사람은 자신을 평가할 준거를 타인에게서 찾는데, 알고리즘이 비교 대상의 "최고 순간"만을 반복 노출하면 자신의 일상적 진도와 왜곡된 비교가 발생하는 것이다.
흔히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개발자 인플루언서가 되는 전형적인 경로가 있다.
이 경로의 핵심은 "FAANG-to-Funnel 파이프라인" 이라고 한다. 빅테크 취업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 증명(credential) 으로 기능하는데, 이 구조에서 일반적으로 코드 작성 능력은 부차적이고,
상당수는 "소프트웨어 작성을 사랑하지 않고, 소프트웨어 작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소프트웨어는 더 이상 제품이 아니다. 당신이 제품이다"라는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보통은 이러한 유형은 이야기로 꾸며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현장의 경험이 콘텐츠가 된다
가령 회사에서 서비스를 만들던 개발자가 자신이 겪은 일을 영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고 해보자. 데이터베이스 쿼리가 왜 느렸는지, 어떤 추상화를 넣었다가 오히려 수정하기 어려워졌는지, 장애가 났을 때 처음 의심했던 원인이 왜 틀렸는지 같은 이야기는 실제로 도움이 된다. 설명 속에 적용 조건과 시행착오가 있고, 시청자는 책의 정의만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판단 과정을 배울 수 있으니까.
이때 그 사람의 전문성은 특정한 경험에 붙어 있다. 어떤 규모와 환경에서 무엇을 해봤고, 무엇이 실패했으며, 그 실패를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신뢰의 근거가 된다. 모든 언어와 프레임워크를 다 안다고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가 있고, 오히려 자신이 겪은 범위를 자세히 설명할수록 다른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도 보인다.
그런데 채널이 커지면 해야 하는 일이 달라진다. 개발 이야기를 가끔 기록하던 사람이 정기적으로 영상을 내놓는 사람이 되고, 그 영상이 수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하면 다음 주제를 고르는 일도 더 이상 여유가 있을 때 하는 부업만은 아니게 된다.
기획하고 대본을 쓰고, 예제를 만들고 촬영하고 편집하며, 제목과 썸네일을 고르고 반응을 살피는 일이 일정에 자신의 삶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현장을 돌아다녀도 사람의 경험은 한정적이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는 것이다. 이때쯤부터 슬슬 유행하는 기술 주제와 트렌드 주제로 넘어가게 된다.
처음에는 본업에서 나온 경험으로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경험할지 고르는 상황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개발자는 진지하게 생각한다.
'개발을 이어가야하는가, 콘텐츠 제작자가 되야하는가?'
개발은 괴롭다. 현실적으로 그렇다. 해고 당하면 내가 공부한 스택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리액트 쓰는데 갑자기 저번에 방문했던 중국 회사처럼 Vue.js를 쓰면 어떡하지?
콘텐츠 제작자는 자영업자고, 개발자랑 다르게 짤릴 일이 없어보인다. 그러는 사이에 갑자기 유튜브에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이것이 함정이다. 한국 유튜브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공유되는 경험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Step.1 초기 유입 효과: 유튜브는 초반에 채널을 플랫폼에 안착시키기 위해 알고리즘을 통해 적극적으로 영상을 띄워준다.
Step.2 수익 정체기: 전업 유튜버로 활동하며 구독자가 늘어나도(예: 20~30만 대와 150만 대 등), 일정 시점 이후에는 조회수나 수익이 크게 늘어나지 않고 정체되거나 둔화하는 현상을 겪게 된다.
Step.3 추가 수익 모델의 필요성: 알고리즘과 플랫폼 수익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유명 유튜버들은 결국 외부 광고, 개인 활동, 사업, 서브 채널 개설 등 다각화된 제2의 수익 구조를 마련된다.
보통 초기 유입 효과에서 수익이 창출 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유튜브에 사활을 걸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 즉 상위 크리에이터가 되서, 광고와 강의, 스폰서쉽, 멤버쉽을 받는 상상을 받는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매일매일 알고리즘과 대중에게 해고당할 위협'에 시달린다는 뜻이다. 개발자는 코드가 런타임에서 작동하면 최소한 그날의 과업을 증명할 수 있고, B2B 클라이언트와 계약을 맺으면 법적인 보호와 확정된 현금 흐름을 얻는다. 반면, 인플루언서의 상사는 변덕스러운 대중과 블랙박스인 유튜브 추천 시스템이다. 어제 터진 조회수가 오늘도 터질 것이라는 보장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전문성을 유지하는 일과 채널을 유지하는 일
물론 전문성은 당연히 남아 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은 트렌드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프로그래밍은 복합적이다.
버그 추적, 시스템 경계 나누기 같은 근본 원리는 잘 변하지 않는다. 이런 패러다임은 잘 변하지 않지만, 반대로 너무 많이 다뤄서 경쟁력이 없다.
즉 콘텐츠로써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조회수와 클릭을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대중에게 인기로 먹고 살아야하는 직업이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근본 원리를 다루면 조회수가 안 나오고, 조회수가 안 나오면 채널이 죽는다. 이 딜레마에 빠진 콘텐츠 제작자가 선택하는 전략은 정해져 있다. 공포 마케팅이다.
공포 마케팅의 문법은 놀랍도록 반복적이다.
첫째, 트렌드 체이싱(trend chasing).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이것을 모르면 끝"이라는 공포를 심는다. 그 기술이 실제로 안착하면 "내가 먼저 주목했다"는 권위를 얻고, 문제가 드러나면 조용히 다른 주제로 옮겨간다. 실패에 대한 비용은 시청자가 치른다. 그리고 실리콘 밸리를 위시한 프로그래밍 문화는 이걸 적극적으로 부추긴다. 프로그래밍의 SaaS를 판다는 건 어쩌면 다단계와 같기때문이다. 그 기술이 망해도 다음 영상에서는 또 다른 "이것을 모르면 끝"이 올라온다. 표정은 똑같다.
둘째, 특정 기술 비하. "PHP는 나쁘다", "jQuery는 죽었다" 같은 주장으로 기존 기술을 불태우고 전환을 부추긴다. 기술 선택에는 항상 맥락이 있고 트레이드오프가 있지만, 그런 뉘앙스는 클릭을 만들지 못한다. "X는 끝났다"가 "X는 여전히 유효한 선택지다"보다 훨씬 강한 제목이 된다. PHP는 그 영상이 올라간 뒤에도 조용히 웹의 상당 부분을 돌리고 있다. 유튜브에 올리지 않을 뿐이다.
셋째, 후회 콘텐츠(regret videos). "내가 이것을 몰라서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를 보여주며 시청자의 불안을 자극한다. 시청자는 "저 사람도 겪었으니 나도 지금 배워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후회는 가장 강력한 FOMO 트리거 중 하나다. 그 사람은 지금 그 기술로 잘 먹고 산다. 후회했다고 하면서. 프론트 개발자에게 애정과 증오를 받는 리액트를 유튜브로 검색하면 수많은 후회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아무도 그 사람이 지금 그 기술로 잘 먹고 산다는 사실은 지적하지 않는다.
넷째, 가짜 공포. "AI가 개발자를 대체할 것이다", "코딩은 5년 안에 사라진다" 같은 주장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AI는 개발자의 도구가 되고 있지만, 그 변화의 속도와 방향은 훨씬 복잡하다. 그러나 복잡한 설명은 조회수를 만들지 못한다. 단순한 공포만이 클릭을 만든다. 그 영상의 편집은 아직 사람이 했다. 아직은.
이 문법의 핵심에는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 이 자리 잡고 있다. 성공한 사례만 보여주고, 실패한 다수의 이야기는 생략한다. "유튜브로 성공한 개발자"는 보여주지만, "유튜브를 시작했다가 아무도 보지 않아 접은 수많은 개발자"는 보여주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만 반복되면, 시청자는 그것이 재현 가능한 경로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늘 경로 의존성을 따른다. 그 사람이 그렇게 성공했으니 나도 그렇겠지. 물론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다른 유명 프로그래머의 경로를 따라서 아무도 보지 않을 홈페이지를 만들고,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쓴다.
미래의 긴급성을 파는 방식
깊이 있는 기술 설명에는 말할 수 있는 범위가 있다. 어떤 환경에서 써봤는지 설명하고, 잘 안 되는 조건도 보여줘야 하며, 모르는 부분에서는 결론을 잠시 멈춰야 한다. 반면 "이제 이 기술을 모르면 뒤처진다"는 말은 훨씬 넓은 시청자에게 자신과 관계있는 문제처럼 들릴 수 있다. 그 기술을 당장 쓸 일이 없는 사람까지 자기 경력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니까.
현장에서 새로 검증한 이야기는 줄었는데 계속 최신 흐름을 판정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면, 구체적인 사용 경험 대신 미래 전망으로 주제를 채우는 상황이 생긴다.
Good와 Hyman의 연구는 즐거움을 위한 서비스나 경험을 상상하는 시나리오 실험에서, FOMO를 자극하는 메시지가 구매 의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했다. 기대하는 기쁨과 자기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느낌을 통해 의향이 강해질 수도 있었고, 지출을 후회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약해질 수도 있었다. 놓칠지 모른다는 감정을 구매 판단에 연결하려는 방식은 연구된 마케팅 기법이다.2
어떤 도구가 특정 작업을 줄여준다는 설명이, 그 도구를 쓰는 사람이 다른 개발자를 전부 대체한다는 전망으로 커지는 식이다. 앞의 주장은 작업과 조건을 정해 비교할 수 있지만, 뒤의 주장은 직무와 조직, 기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런데 조건을 생략하면 시청자에게 남는 것은 비교할 근거보다 지금 당장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다.
이 압박이 강의나 유료 커뮤니티, 특정 제품의 판매와 결합하면 더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도구를 소개하고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 자체는 정당한 사업이고, 돈을 번다는 이유만으로 기술 설명이 틀려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기존 능력이 곧 무가치해질 것이라는 전망에 충분한 근거를 대지 않으면서, 자신이 제공하는 경로에 지금 올라타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무엇을 가르치는지뿐 아니라 구매의 긴급성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런 판매 문법은 필요한 자료를 찾아온 시청자에게 계속 따라와야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특정 문제를 해결했으니 잠시 관심을 꺼도 되는 상황에서조차, 다음 흐름을 놓치면 다시 뒤처진다는 설명을 붙인다.
반복 구독과 구매를 재촉하는 말이 새로 입증한 효용보다 불안에 기대게 되는 것이다. 시청자가 실제로 어떤 이유로 구매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하지만, 적어도 판매자가 무엇을 이유로 구매를 권하는지는 공개된 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불안한 전망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 서둘러 대응해야 할 변화도 있다. 그러니 듣고 불안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설명을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은 세 가지다. 전망의 근거와 조건이 빠져 있는지, 확인하지 않은 가능성을 피할 수 없는 미래처럼 말하는지, 그 미래에 대응할 방법을 자기 상품으로만 좁히는지. 이 정도는 상대의 속사정을 모르더라도 따져볼 수 있다. 상대의 속사정을 모르더라도, 라고 썼지만 사실 속사정을 알면 더 재미있어진다. 알 필요는 없다.
인플루언서 자신도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
FOMO를 파는 사람은 항상 여유 있게 남의 불안을 조종하는 사람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자신이 정말 미래를 예측한다고 믿게 된다는 점이다. 채널 운영자 자신도 이번 흐름을 놓치면 관심을 잃을까 봐 불안할 수 있고, 다른 채널이 새로운 도구를 먼저 소개하면 아직 충분히 써보지도 않았는데 빨리 의견을 내야 한다고 느낄 수 있다. 알고리즘은 이 심리를 정교하게 벼려낸다.
그렇게 보면 두 불안은 서로 이어져 있다. 운영자는 화제를 놓치면 잊힐까 봐 불안하고, 시청자는 그 화제를 배우지 않으면 뒤처질까 봐 불안하다. 새 소식이 나올 때마다 운영자는 빨리 설명하고 시청자는 빨리 배워야 한다고 느끼는데, 정작 그 도구가 양쪽의 실제 작업에서 어느 문제를 해결하는지는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채 다음 화제로 넘어간다.
카지노에 오래된 격언이 있다.
"게임을 하지 말고 수수료 장사를 해라."
여기서 게임을 하는 쪽은 누구인가. 코딩을 팔지 않고 코딩 이야기를 파는 사람은, 자기가 드디어 하우스 쪽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올라탄 판의 하우스는 따로 있다. 영상이 아무리 잘 되도 수수료는 플랫폼이 먼저 가져간다. 인플루언서는 딜러인 척하는 도박꾼이고, 진짜 하우스는 알고리즘이다.
판단의 범위를 분리하기
예전에 좋은 설명을 해준 사람에게 신뢰를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부모님을 신뢰한다. 물론 그분들은 매일 유튜브 가짜 뉴스를 보고 나에게 일장 연설을 하시지만, 유년기의 좋은 경험이 있기에 신뢰한다. 프로그래머 인플루언서도 다르지 않다. 어떤 주제를 잘 설명해준 사람에게 호감과 신뢰가 생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신뢰의 범위다. 데이터베이스 운영을 잘 설명했던 사람의 새 언어 소개를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개발자의 미래까지 정확히 안다고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새 도구를 소개하는 능력과, 그 도구가 내 경력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능력은 다른 문제다. 시청자는 신뢰를 어디까지 적용할지 계속 조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유명한 사람이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반대편의 유명한 사람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한쪽은 지금 안 배우면 끝난다고 하고, 다른 쪽은 전부 거품이라고 한다. 둘 중 어느 쪽에 붙어야 마음이 편해질지만 따진다면, 여전히 남이 정해준 문제 안에서 움직이는 셈이다. 구독자 수는 판단의 범위를 보장하지 않는다. 신뢰는 사람에게 하되, 판단은 영역별로 하자.
그럼 어떻게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방법은 없다. 휩쓸리지 않으려면 물속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데, 개발자로 살아가는 한 물속에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회사가 바뀌고, 채용 공고의 키워드가 바뀌는 걸 피할 수는 없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보는 것을 정하고, 우리는 그걸 보면서 불안해진다. 그 불안을 피하려고 또 다른 콘텐츠를 찾는다. 이 고리를 끊을 방법은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 비켜서서 보면, 휩쓸리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어차피 휩쓸릴 거라면, 휩쓸리면서 뭘 배우는 게 낫다. 새로운 도구가 나오면 한번 써보고, 유행이 지나가면 "그때 그거 재밌었지" 하고 넘어가면 된다. 모든 유행을 다 따라잡을 필요는 없지만, 아예 안 따라가면 재미가 없다. 휩쓸림에도 능동태가 있다. 수동적으로 휩쓸리는 것과, 일부러 한번 타보는 것은 다르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불안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보다, 불안을 안고 놀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지 말고 수수료 장사를 하라고 했지만, 우리는 이미 게임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왕 하는 게임, 즐기면서 하는 게 낫다. 돈은 잃을 수 있다. 하지만 재미는 챙길 수 있다. 어차피 휩쓸릴 거라면, 휩쓸리면서 웃는 쪽이 낫다.
그런데 휩쓸리면서도 뗏목만은 있어야 한다. 뗏목이 없으면 물살에 몸을 맡긴 채로 계속 떠내려간다. 뗏목은 당장 내가 쓰지 못할 기술이 아니라, 당장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유튜브가 가르쳐주는 것은 대부분 당장 쓰지 못할 기술이다.
"앞으로 5년 안에 대세가 될 것", "지금 배워두면 나중에 좋다"는 말은 뗏목이 아니라 물살이다.
반대로 당장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오늘 밤에 마감이 있고, 내일 아침에 누군가 확인하는 일이다. 물살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지만, 뗏목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나는 한국의 ERP 도메인에서 꽤 오래 생존하고 있다. 이번에 세무쪽에서 2027년에 근로지급명세서가 매월로 바뀌고, 반기 납부가 월간으로 바뀐다. 지금 원천세 사용직 간이지급명세서 칸이 6월, 12월에만 열리는데, 그걸 매달 열리게 해야 한다. 설정칸에 개정년도를 넣고, 법이 바뀌는 연도를 규칙으로 두고, 숫자만 바꾸면 되게 해야 한다.
이 일은 유튜브에 올려도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다. "2027년 근로지급명세서 매월 제출 대응기"라는 영상은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실제로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한다.
아마 이 일을 끝내고 나면 또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것이다. 누군가는 그 기술을 모르면 개발자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할 것이고, 나는 또 그 영상을 눌러볼 것이다. 솔직히 재미있으니까. 어쩌면 불안해서 며칠 동안 공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 영상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내일의 작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영상을 열심히 봤다고 해서 오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휩쓸릴 것이다. 새로운 언어가 나오면 궁금해하고, 멋진 시연을 보면 감탄하고, 누군가 나보다 훨씬 앞서가는 것 같으면 불안해할 것이다.
다만 물살에 휩쓸리더라도 내가 타고 있는 뗏목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잊지 않으려 한다.
일단 내일은 지급명세서 화면부터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