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가 취소되고 돌아오는 길

왜 이렇게 먹고 사는 일은 날 힘들게 할까

Makonea
··12분

의뢰가 오늘 취소됐다. 상업용 드론 의뢰였는데 초기 위약금만 받고 취하됐다. 위약금은 완성 금액의 1/8 터무니없는 수치다. 그나마 일을 소개해주던 형님쪽에서 사정을 봐줘서 그 금액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의뢰 소개해준 형님과 밥 한끼 먹었다. 돼지 국밥이랑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술을 못하기때문에 술을 안마시고 그냥 국밥과 커피를 먹고 내가 커피는 샀다.

형님은 앞으로 뭐할거냐고 물어봤다. 취직 생각이 있느냐 떠보는 것이리라. 아직은 없다고 했다.

형님은 일장 연설을 했다.

"너도 나이가 있을거 아니냐. 모아둔 돈도 빚 다 갚느라 다 썼고, 올해 공장 시설 확장 일 취소되서 돈 없다매"

맞는 말이긴하다.

"너 올해 초에 창업 지원은 신청했냐?"

창업 지원이랑 울산 지역 지식 산업 센터에 들어갈 생각 없느냐 물었다. 일단 사무실이 있어야 사람들이 믿을만한 거 아니냐라는 논리였다.

창업 지원은 떨어졌고, 지식 산업 센터쪽은 생각을 안해봤다고 말했다.

"너는 나이가 찼으면서 생각을 안하냐 형이 걱정되서 그런다"

내 돈 내고 잔소리를 계속 들으니 그렇게 좋은 감정은 아녔다. 나도 내 미래가 걱정되긴한다. 근데 평생 일한다고 집 하나 못산다는 생각에 관뒀던 것들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일 주선 해주는 형이니까 그냥 듣고만 있었다.

결론만 내리자면 자기가 아는 공장 자동화 업체가 있는데 월 320쯤 받고 들어가지 않겠느냐였다.

근데 나는 알고 있다. 저 월 320 받는다해도 주 52시간은 커녕 60~70시간씩 구르고 야근 한다는 거, 거기에 야근 금액은 못받는다는 거.

그래도 한 10년 구르면 아마 지방에 아파트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쪽 일이라는 건 그렇다. 자동화 설비는 노후화된 기술이고 배우는 순간 레거시에 종속되서 최신 유행 스타일과 다른 낡은 환경에 고착된다. 이직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경력 인정도 안되고 깃은 커녕 버전 관리도 하지 않는다.

"게임 만들어서 대박 노릴려고요"

라고 말을 했다. 형님은 거기에 대해서 어이가 없어서 했다.

"동우야, 니 능력을 무시하는게 아니라, 잘 알지 니가 두 세 사람 몫하고, 뭐 프로그래밍 지식 많고 논문 많이 보는거. 근데 현실을 살아야 한다. 너 울산에서 게임 만든다고 한지 2년 지났는데 뭐 출시하긴 했어?

"그 돈내고 게임 만드는 에셋을 사기당해서..."

"니는 구구절절 변명만 늘어놓는 버릇을 고쳐야한다. 남들 다 하기 싫은 일 하고 산다"

맞는 말이다. 그냥 말 없이 앞에 놓인 치즈케이크만 먹었다. 형님은 몇 마디 하더만 내 기분이 안 좋은 걸 눈치 챘는지 어플리케이션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럼 생각하는 게임이나, 어플리케이션은 있고?"

"있어요."

"요즘 AI 잘 되니까, 좀 쓰면 금방 아냐? 너 옛날에 행사에 쓰일 모션 쓰는 게임 작은 거 납품했잖아. 그쪽은 어때?"

스팀 등록비 10만원이랑 그다음에 AI 아트를 쓰면 안 팔린다는 것부터 너무 많은 생각이 흘러 지나갔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 거의 취미 생활은 홈페이지 관리랑 언어 컴파일러 만들기다.

"쓰려고 하면 하는데, 아이템을 좀 보고 있어요. 요즘은 홈페이지 관리랑 컴파일러 만들어보고 있어요"

"컴파일러? 뭐 또 교수 스타트업 의뢰야? 홈페이지 관리는 왜?"

예전에 교수 스타트업 일 받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 기억으로 말했을 것이지만 그건 아니라고 말했다. 교수 스타트업 특징은 교수는 자기 분야외에는 문외한인데 보는 눈만 높아서 비용대비 최악이다. 거기에 더해서 교수랑 작업하면 절대 그 교수는 하청 작업자를 쓴 사실을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아마 명성에 금이 간다고 생각하나보지. 교수라는 건 피곤한 생물이다.

"그냥 해외에 일 받으려면 홈페이지 있어서 이쪽 통해서 업워크 업체 통해서 연락 오는 경우가 있어요. 나는 오픈소스 같은거 그런거 기여 안하니까 홈페이지 꾸밈 보고 가끔 연락하더라구요"

"해외쪽 기업들은 돈 많이 줘?"

"건당 100달러 정도짜리 작은 일만 와요. 업체끼고"

"그럼 대체 왜 하고 있냐?"

그 형님 기준은 다 돈이다. 나는 홈페이지를 돈을 쓰지만 내 에고를 지키기 위해서 쓰고, 내 타입 스크립트 기술을 녹슬지 않기 위해서 쓰고 있다고 말하려 했지만.

"홈페이지 꾸미는 게 재밌어서요. 뭐 지식 정리도 하고"

탐탁치 않아 하는게 눈에 보였다.

"저도 이름 값이 생기고 싶은데, 형님도 알다시피 이름 값은 서울 놈들 컨퍼런스랑 밋업 같은데 가야 생기잖아요. 교류하고. 근데 여기 깡촌에 있어봤자 내 실력 자랑할데가 있나요. 한국 오픈소스에 뭐 개 좆도 없는 거 아시잖아요. "

"그럼 서울 가면되지 왜 울산에 있는거냐?"

"요새 취직 안되요."

형님은 나보고 맨날 부정적이라고 말한다. 근데 나도 내가 부정적인 걸 안다. 하지만 노력을 안하는 건 아니다.

"동우야, 너 결혼은 안 할거냐? 너 논문보고 니가 많이 안다고 해도 솔직히 서울에 있는 애들에 비해서 많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너도 알다시피 공기업 의뢰받는 모기업은 카이스트 출신에 XXX 기업 같은데는 학력만 보고 뽑는거 너도 아는데, 니는 너무 망상속에 살아. 최신 기술이니 뭐니 기술 덕후 짓해서 돈이 안나오잖아. 리니지 같은거 만들려고 해도 돈 엄청 드는데 너 그런 자본금은 있어?"

그냥 아무말도 못했다.

"자본금은 없죠."

"그러니까 취직해서 목돈 모아서 하라는거야."

근데 남의 돈을 받기 시작하면 거기에 안주할까봐...라고 말하려다가 아무 말도 안했다.

실제로 AI가 활성화되고 작년부터 말부터 일거리가 거의 없다. 근근이 일한건 작년 인맥으로 한것들이다. 이것들도 요즘은 AI 자동화로 많이 줄었다. 사실상 해외에 나가야하는데 해외쪽 일오는 건 대체로 사기성 스팸메일이다.(실제로 이력서 보냈는데 사기여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너 알만한 기업 출신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잖아. 너 형이 기사 따라고 했을때 뭐라했냐. 프로그래밍은 정답이 없고, 정답의 사고방식이 판에 박혀서 싫다. 이래서 안따니까 수주할때마다 불리하잖아"

한국은 기사 자격증으로 보통 웃돈을 쳐주기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J2EE 모델을 여전히 파는 기사 시험을 보면 그런 옛날 모델을 달달 외우는 건 취향이 아니다. 나도 자존심이 있는 것도 있는거지만, 그럼 날 안부르면 되는데 계속 부르는 건 내가 성공률이 높다는 건 그쪽도 잘 알아서일 것이다.

"결혼은 포기했어요. 외모도 그렇고 저 키도 작잖아요."

"야, 돈 모으고 차 사면 달라. 남자가 사회생활하면 그래도 여자가 붙는다"

그래서 명함 하나 주면서 면접을 보지 않겠냐라면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내 실력이면 인정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울산에서 WPF 쓸 수 있는거 너 말고 없으니까 경쟁력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거지만, 실상은 내가 우쭐해있을때, 기업에 꽂아넣을려고 하는 것이리라. 방심해서 무는 순간 항상 결말은 나쁘게 일어난다. 일단 울산 대부분 업체는 윈폼인데 WPF를 다룰 수 있다는 건 나름 경쟁력이 있긴하지만, 남이 날 띄워주는 건 보통은 방심 시키는 것이다.

애초에 다른 쪽으로 가보려는 것도 WINUI3부터 시작해서 마이크로소프트 행보가 너무 불안해서 오로지 윈도우 어플리케이션으로는 도저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서 타입 스크립트를 배운 것이다. 일렉트론은 리눅스도 MAC OS도 지원하니까.

잘 모르겠다. 취직을 해야할지. 홈페이지 꾸미기는 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돈이 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치료 한다. 내가 아무리 지식을 쌓아도, 사람들은 그걸 서술해 놓지 않으면 인정해주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서 프리랜서 특성상 NDA 작업이 많기때문에 경력 인정도 어렵다.

그렇지만 나는 도피를 하고 있을 것일까?

평생 일한다고 집 못사는 걸 안다면서 도피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프리랜서로 돈을 벌고 있다. 사실 빚 갚은 건 오히려 프리랜서였기때문에 갚을 수 있었다. 월급으로써는 힘들지만 상방이 높기때문에 고가 의뢰를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뢰가 점점 줄어들어서 문제지. 도박꾼 마인드인 것은 맞지만, 내가 들어갈 수 있었던 회사에 있었다면 빚 갚는 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방이 무한히 낮지만, 상방은 취직했을때보다 더 높다. 서울의 생활의 비용까지 생각했다면 지금보다 더 암울했을지도 모른다.

치즈 케이크는 맛있었다. 미래는 모르겠다. 미래도 치즈케이크처럼 달콤했으면 좋겠는데, 형님이랑 이야기하다가 울적해졌다.

현실이 너무 괴로워서 나는 코딩을 한다. 프로그래밍은 괴롭지 않다. 그냥 논문 읽고 해보고 동작하고 이런 과정이 현실보다 덜 고달프다. 인생은 왜 이렇게 고달픈지.

남들 다 하는 연애, 남들 다 하는 취직, 다 못하고, 썩어가는게 맞는 것인지. 사실 썩어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지금 살아 있다 생각을 한다. 단지 현재 상태가 조금 가난할 뿐이다.

이 가난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지만 단순히 사기 당해서 뒤쳐진것뿐이고.

가난한 건 버틸만 하다. 나이가 들어가는게 불안하지만, 결혼은 거의 포기했기에 버틸만 하다. 하지만 미래가 없어 보이는 것은 더욱 버티기 어렵다. 내가 공사현장을 관둔 것도 그것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서울에 안 태어나고 특출난 대학이나 이런곳에서 올라가지 못하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기껏해야 유튜버나 사기 정도다. 지방 소멸이 되는 시점에서 성공할 수 있는 무언가는 점점 좁아진다. 그런 미래를 보는데 내가 무언가를 바로 시장에 낼 수 있다는 프로그래밍의 매력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비대칭 무기다.

그냥 생각이 많다. 사람들은 흔히 프로그래밍 실력이 있으면 다 할 수 있다 말하지만 프로그래밍 분야는 매우 넓고 복잡해서 모든 걸 다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풀스택 엔지니어도 백엔드, 프론트도 할 수 있지만 이는 깊이 있게 하려면, 즉 전문성을 가지려면 그 분야만 파야하는데 프리랜서 특성상 그렇게 깊이 있는 프로그래밍을 갖추기 어렵다.

하지만 이쪽으로 취직한다해도 사실 공장 자동화 설비쪽 취직을 하면 미래를 그리기 어렵다. 야근부터 시작해서 자기 계발이 어렵고 기술 동향을 따라가기 어렵다. 전문성이야 생기겠지만, 그 전문성이 돈이 되거나, 다른 시장으로 이전이 가능하냐는 별개의 문제다. 내가 봤을때 이쪽 계열은 그러한 이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민이다. 프로그래밍은 계속하고 싶다. 근데 여건이 따라주질 않는다. 내 실력도 그렇게 특출난 편은 아니다.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