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utie street의 사쿠라바 하루카 아주 아름답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하찮은가
한국에서 한때 유행했던 말 중에 어느 유명 사교육 강사가 한 말이다.
매우 잘생긴 유명 배우인 '차은우'를 보고, 메가 스터디의 조정식 강사가 한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후광효과(Halo Effect)라고 부른다. 인간이 얼마나 시각적이고 본능적인 동물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세상 사람들은 입을 모아 사람을 볼 때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착하고, 정직하고, 남을 배려하며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세상물정을 조금씩 알게 될수록 의문이 든다.
과연 현대사회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게 밥 먹여주는 가치가 있기는 한 걸까? 마음이 곱고 선하게 사는 것이 현실의 생존과 사회적 성공에 정말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걸까?
선함이 자산이었던 시대
이동이 어렵고 평생 같은 얼굴들을 보며 살아야 했던 옛날 농경사회를 생각해 보자. 굳이 조선시대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어렸을 때인 90년대만 해도 동네의 옆집 김씨네, 앞집 이씨네가 다 같이 밥을 나눠 먹고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공동체 생활이 남아 있었다.
이런 좁은 세상에서 평판은 곧 생존 자산이었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고 떼먹거나 이웃에게 사기를 치면 그 바닥에서 매장당했다. 오늘의 비열한 행동이 당장 내일의 거래와 인간관계를 막아버리는 구조다.
반대로 정직하고 책임감 있다는 평판을 얻으면 일거리와 협력의 기회가 늘었다. 옛날 사람들이라고 해서 딱히 도덕적으로 더 고결해서 착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장기적으로 볼 때 착하게 사는 편이 자기에게도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게임이론에서는 이를 반복게임(Repeated Game)으로 설명한다. 판이 한 번으로 끝나는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뒤통수를 치는 게 무조건 이득이지만, 같은 상대와 내일도 모레도 계속 게임을 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장 한 번 배신해서 챙기는 푼돈보다, 앞으로 영원히 잃게 될 협력의 가치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절의 평판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진짜 내면의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마을의 규범에 얼마나 고분고분하게 순응하는가'에 가까웠을 것이다. 속으로는 딴생각을 품고 겉으로만 친절을 연기하는 위선자도 많았을 테고.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같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소문이 돌고 도는 세계에서는 내 행동이 기록으로 축적되었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나에게 청구서로 돌아왔다.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현대사회는 판의 규칙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언제든 이사를 가고, 이직을 하고, 판을 갈아엎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넘어오면 더 가관이다. 의견이 안 맞으면 차단 버튼 한 번 누르면 끝이다. 커뮤니티에서 분탕을 치고 욕을 먹으면 아이디를 새로 파거나 다른 커뮤니티로 옮기면 그만이고, 인간관계가 껄끄러워지면 잠수를 타버리면 된다. 관계에서 탈출하는 비용이 한없이 0에 가까워진 것이다.
상대를 두 번 다시 안 봐도 된다면, 오늘 내가 저지른 양아치 짓이 내일의 나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일도 없다. 이런 점에서 선함을 유지해야 할 경제적 유인이 증발한다. 단판 거래에서 상대에게 불리한 결함을 숨겨도 들키지 않는다면, 정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는 사람만 바보가 된다. 선함의 도덕적 가치가 사라진 게 아니라, 선함이 개인의 이득으로 되돌아오는 보상 회로가 끊어져 버린 것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현대사회에서 점점 가치가 절하되는 것이 이 문제때문일 것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관찰하기 어렵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얼굴은 1초 만에 보인다. 직업, 학력, 연봉, 타고 온 차 같은 경제적 조건도 서류 몇 장이나 짧은 대화로 금방 확인이 끝난다. 심지어 최근 해외에서는 부유층들이 일부러 티가 나도록 과장되게 얼굴을 뜯어고치는 현상을 두고 '리치 페이스(Rich face)'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넘어, 내 얼굴에 이만큼의 거금을 태울 여유가 있다는 재력의 신호마저 얼굴 가죽에 직접 박아 넣어 1초 만에 과시하는 것이다.1
하지만 이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치지 않을 사람인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자기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인지는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입으로는 누구나 자기가 착하고 정직하다고 말한다. 모든 프로그래머는 자신은 장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나는 프로그래머의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소개서에 '책임감이 강함'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그건 돈이 전혀 안드는 행위다.
진짜 내면은 그 사람이 궁지에 몰렸을 때, 혹은 남몰래 나쁜 짓을 저질러도 아무도 모를 상황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즉, 내면을 확인하려면 반드시 '긴 시간'과 '위기 상황'이라는 비싼 검증 비용을 치러야 한다. 즉 내면은 장기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의 환경은 그렇지 않다.
현대인들에게 타인을 그렇게 오래 지켜봐 줄 시간도 여유도 없다는 것이다. 평가할 시간이 짧으니 사람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껍데기(외모, 스펙, 재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연애든 비즈니스든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참 진국인 사람'이라는 사실은 관계를 오래 유지할 힘은 될지언정, 처음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지는 못한다.
여기서 내면의 아름다움은 역설에 들어간다.
관계를 오래 유지할수록 빛을 발하는 특성인데, 정작 그 관계를 시작할 기회는 외모나 스펙 같은 전혀 다른 껍데기들이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내면이 금덩어리 같아도 입구에서 컷을 당하면 보여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내 아름다운 내면을 알아볼 때까지 네 시간과 감정을 투자해라!"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AI 시대에는 왜 학벌이 다시 앞설 수 있는가
프로그래밍 바닥을 보면서도 나는 소름 끼치도록 똑같은 역설을 느낀다.
예전에도 학벌 장벽은 있었지만, 적어도 이 바닥에는 학교 간판 없이도 실력을 증명할 뒷문이 열려 있었다.
직접 짠 프로그램을 들이밀고, 남들이 못 고치는 버그를 잡고, 끝까지 돌아가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어디 나왔냐?" 질문 보다는 "이거 내가 만들었는데요"가 훨씬 강했다.
실제로 서울대나 고려대를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현업의 코드를 잘 짜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현업의 기술은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알고리즘을 깊게 알면 좋다고들 말하지만, 솔직히 현업에서는 자료구조를 바닥부터 직접 구현하기보다 선배들이 이미 극한으로 최적화해 둔 언어 내장 구조나 라이브러리를 가져다 쓰는 일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어설프게 배운 지식으로 섣부른 최적화를 시도하다가 코드만 꼬여서 유지보수를 망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극소수의 최상위 빅테크(FAANG 등) 코어 개발을 제외한 대다수 애플리케이션 계층에서는 학술적 알고리즘보다 프로그램의 생명 주기와 직결되는 유지보수 즉 '코드 위생(Code Hygiene)'이 훨씬 중요했는데, 이건 대학 강의실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야생의 영역이었다.
그 시절에는 돌아가는 결과물 자체가 이 야생의 시간을 통과해 왔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AI가 코드를 대신 짜주는 시대가 열리면서 이 증거의 가치가 폭락했다.
이제는 프롬프트 몇 줄만 잘 치면 누구나 그럴듯하게 돌아가는 첫 화면과 데모 앱을 뚝딱 만들어낸다.
물론 AI를 잘 다루는 것도 능력이다. 하지만 똑같이 매끈한 화면을 들고 온 두 지원자 중에서, 누가 요구사항이 뒤집혔을 때 아키텍처를 뜯어고칠 수 있는 코드 위생을 갖춘 사람이고 누가 AI가 싸놓은 똥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인지 겉모습만 봐서는 구별할 길이 없어졌다는 데 있다.
실제로 Galdin과 Silbert의 2025년 연구를 보면, 프리랜서 플랫폼(Freelancer.com)에서 공고에 맞춰 정성스럽게 작성된 제안서에 클라이언트가 지갑을 열던 경향이 LLM 등장 이후 뚜렷하게 약해졌다고 한다. 공들여 쓴 글이라는 게 더 이상 성실함이나 실력의 증거(Signaling)가 되지 못하는, 이른바 '말의 가치가 똥값이 된(Making Talk Cheap)' 시대가 온 것이다.2
채용 담당자가 지원자 수백 명과 몇 달씩 같이 일해볼 수는 없다. 지원자는 넘쳐나고 판별할 시간은 없는데 포트폴리오 화면마저 다 똑같이 훌륭해 보인다면, 인사팀은 결국 어디에 기대게 될까?
가장 확인하기 쉽고 위조하기 어려운 옛날 표식, 즉 학벌과 대기업 경력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학벌이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없다. 다만, 학벌 바깥에서 실력을 증명해 주던 '구현 결과물'이라는 신호가 오염되었기 때문에, 이미 검증 비용이 지불된 대학 입시 결과에 무임승차하는 편이 가장 안전하고 값싼 선택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2026년 Stephany 등의 연구처럼 AI 스킬 자체가 학력 불이익을 일부 상쇄한다는 설문 실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서류에 적힌 또 다른 스펙의 조합일 뿐이다.)3
오래 관측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가치들은, 입구에서 빠르게 사람들을 걸러내는 시대가 올수록 출발선에도 서보지 못하고 탈락한다.
누구나 코딩할 수 있는 도구가 풀렸다고 해서 기회가 평등해졌다는 낙관론이 얼마나 허망한가.
레몬 마켓과 호구의 경계선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른다. "세상이 그렇게 각박하고 사기꾼이 넘쳐나면, 반대로 정직하고 실력 있는 사람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일 만큼 귀해지는 거 아니냐?"
안타깝게도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가 말한 '중고차 시장(Market for Lemons)'의 법칙은 그렇게 동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4
파는 사람은 내 차가 무사고 명품인지 겉만 번지르르한 폐차(레몬)인지 알지만, 사는 사람은 본네트를 열어봐도 알 길이 없다. 구매자가 좋은 차와 나쁜 차를 구별할 눈이 없으면, 결국 모든 중고차 가격을 평균 이하로 후려치게 된다. 그러면 제값을 못 받은 좋은 차 주인들은 시장을 떠나버리고, 시장에는 사기꾼과 폐차만 남는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라고 부른다.
인간관계와 노동시장도 똑같다. 정직한 사람, 진짜 밑바닥을 이해하는 개발자가 아무리 희귀해져 봤자 상대방이 그걸 알아볼 눈(검증 능력)이 없으면 희소성은 아무런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검증 능력에 대한 자원도 한계가 있다.
오히려 "다들 AI로 대충 짜놓고 거짓말하겠지", "다들 자기 이익만 챙기겠지"라는 불신만 깊어져 진짜 진국인 사람들까지 도매금으로 의심받는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자기에 한해서 고평가하는 성향이 있어서 타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 어려운 것도 있다.
나는 AI를 사용하지만 열심히 검증했는데?
사고를 친 건 다른 개발자고, 나는 그 사고를 수습하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이런 말들을 보면 일정부분 사실도 있지만 과장되거나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다. 거, 왜 논문에서도 빈도수 관련해서 몇번 해본 걸 상당히라는 식으로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나.
기본적으로 사람은 자기에게 유리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기때문에 결국 사람의 자기 평가를 믿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로버트 액설로드가 주최한 반복 죄수의 딜레마 컴퓨터 토너먼트인데, 여기서 최종 우승을 차지한 전략은 놀랍게도 가장 단순한 '팃포탯(Tit for 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었다.5
이 전략의 규칙은 심플하다. 첫판에는 무조건 협력(선함)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상대가 내 뒤통수를 치면 다음 판에는 나도 가차 없이 똑같이 보복하고, 상대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협력하면 그때 다시 협력해 준다.
상대의 선함을 처음부터 검증할 수 없다면, 작은 협력부터 시작해 반복적으로 행동을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선함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자신의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선함은 수동적인 복종일 필요가 없으며,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능력만큼이나, 신뢰를 거둬야 할 때를 판단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사실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더 중요해진 것은 선함 그 자체보다, 서로의 선함을 검증하고 지속적인 신뢰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아마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힘들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타인의 내면을 알아볼 시간을 쓰고 있는가
결국 처음에 던졌던 질문이 부메랑처럼 나에게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남들이 나에게 정직하기를 바란다. 내 클라이언트는 내 실력을 제대로 알아봐 주길 바라고, 내 연인은 내 깊은 내면을 봐주기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가 남을 대할 때는 "착하게 사는 게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지?"라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모두가 타인의 선함과 진정성을 소비하고 싶어 하면서, 아무도 그것을 유지하고 발굴하는 비용은 내려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점차 장기성보다 단기적인 작업으로만 흘러갈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흘러버렸다. 우리 세상은 정보의 과잉 생산 시대고, 여러 정보를 빠르게 해석해야하게 변해갔다. 장기적인 관측이 필요한 정보가 뒤쳐지게 되는 것이다.
오래 걸리는 검증은 비용이고, 당장 눈에 보이는 껍데기는 효율이다.
자본과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세상은 '오래 겪어봐야 아는 진짜'를 발굴하는 대신, '1초 만에 확인되는 그럴듯한 가짜'를 빠르게 보면서 답을 찾는다.
AI를 쓰는 작업도 그렇다. 메뉴얼을 읽고 프로그래밍의 멘탈모델을 형성하면서 에러 로그를 보면서 실패하는 것보다 AI에게 '딸깍'하면서 답변을 빠르게 얻는 것을 더 선호한다.
옛날에는 좋은 문장을 쓸려고 할때 3일 정도 생각하고 썼다. 근데 요즘은 뭐 AI에게 수십번 돌려서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가져와서 병합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싸게 먹힌다. 이 거대한 효율의 논리 앞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이나 장인정신 같은 말들은 박물관에나 들어가야 할 시대착오적 유물이 된다.
가장 코미디 같은 사실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다.
나는 세상이 껍데기만 본다고 이토록 길게 냉소를 퍼부으면서도, 정작 글의 맨 위에는 사쿠라바 하루카의 사진을 걸어 두었다. 나 역시 타인의 깊고 지루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수고 따위는 하기 싫다. 그냥 예쁜거 보는게 내 정신건강에 좋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하찮은가.
그 말을 처음 던진 강사의 농담이 씁쓸한 이유는, 그것이 틀려서가 아니라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한 우리의 민낯이기 때문일 것이다.
각주
- 부자들의 왜곡된 성형수술을 비꼬는 기사기사 ↩
- Anais Galdin·Jesse Silbert, “Making Talk Cheap: Generative AI and Labor Market Signaling”, 2025, arXiv 사전 공개 논문. 초록과 원문 링크. 본문에서 인용한 것은 지원서 맞춤화에 대한 고용주의 지불 의향 변화다. 논문의 상·하위 역량 집단 채용 변화 수치는 구조 모형의 반사실적 모의실험 결과이다. ↩
- Fabian Stephany·Ole Teutloff·Angelo Leone, “AI Skills Improve Job Prospects: Causal Evidence from a Hiring Experiment”, 2026-03-04 수정본 v2, arXiv 사전 공개 논문. 초록과 원문 링크. 영국·미국·독일의 채용 담당자 1,725명이 가상의 이력서를 비교한 설문 실험이다 ↩
- George A. Akerlof, “The Market for ‘Lemons’: Quality Uncertainty and the Market Mechanism”,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84(3), 488–500, 1970. 논문 원문, 서지와 DOI. 본문의 인간관계 논의는 정보 비대칭에 관한 유추임을 밝힌다. ↩
- Robert Axelrod, “More Effective Choice in the Prisoner’s Dilemma”,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24(3), 379–403, 1980. 출판사 초록과 서지. 팃포탯은 첫 수에 협력하고 이후에는 상대의 직전 행동을 따라 하는 전략이다. 대회의 성적이 모든 환경에서의 최적성이나 도덕적 정당성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