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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는 UX가 아닌 OX를 판다.

UX를 진지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Makonea·2026년 5월 1일·30분

(유저 스킨으로 유명하던 WINamp)

UX는 단수가 아니라 분포다

"User Experience"라는 단어는 단수형이다. 하나의 사용자, 하나의 경험. 그래서 우리는 자주 UX를 어떤 한 사용자가 제품을 어떻게 느끼는가의 문제로 다룬다.

이건 틀렸다.

실제로 UX는 N명의 사용자가 제품을 어떻게 느끼는가의 분포다. 한 사용자의 경험이 아니라, 모든 사용자의 경험을 합친 통계적 객체. 평균이 있고, 분산이 있고, 꼬리가 있고, 이상치(outlier)가 있다.

이 구분이 사소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게 글 전체를 결정하는 출발점이다.

우리는 분포를 디자인할 수 없다

분포를 직접 디자인할 수는 없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건 단 하나의 인터페이스다. 하나의 버튼 위치, 하나의 색상, 하나의 폼 구조. 그런데 그 하나의 인터페이스를 받는 건 N명의 사용자이고, 그 N명은 각자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실상 하는 작업은

분포의 어떤 점에 인터페이스를 위치시킬지 결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점을 평균 근처에 놓는다. 평균은 "가장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균은 분산을 무시한다. 그리고 분산이 클수록, 평균은 누구에게도 정확히 맞지 않는다.

N이 작을 때와 클 때

이 문제는 사용자 수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진다.

N=10명일 때, 평균은 거의 모든 사용자에게 가깝다. 10명의 취향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면, 평균 디자인은 10명 모두에게 적당히 잘 맞는다. 이 경우 UX 디자인은 비교적 작동한다.

N=10,000명일 때, 사정이 다르다. 사용자 분포가 다양해진다. 어떤 사람은 미니멀을 원하고, 어떤 사람은 정보 밀도를 원한다. 어떤 사람은 빠른 워크플로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가이드를 원한다. 이 두 그룹의 평균을 잡으면, 미니멀하지도 정보 밀도가 높지도 않은, 빠르지도 가이드가 충분하지도 않은, 모두에게 어색한 디자인이 나온다.

이게 우리가 흔히 "generic"하다고 부르는 디자인의 정확한 정의다. 그건 디자이너의 무능 때문이 아니다. 평균을 디자인했기 때문에 나온 수학적 결과다.

사이트 빌더의 디자인이 generic한 이유

Squarespace, Wix, Webflow 같은 사이트 빌더의 템플릿을 보면, 대부분이 비슷하게 생겼다. 같은 구조, 비슷한 폰트, 익숙한 색상 팔레트, 예측 가능한 섹션 흐름.

이건 사이트 빌더 디자이너들이 게으르거나 상상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다루는 사용자 분포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변호사, 요가 강사, 식당 주인, B2B SaaS 창업자, 결혼식 페이지 만드는 사람

이 모든 사람의 평균을 잡으면 결과는 필연적으로 "어디서 본 것 같은" 디자인이 된다.

이건 UX의 실패가 아니다. 평균 디자인의 수학적 한계다. 사용자 분포가 넓을수록, 평균은 더 흐릿해진다.

그런데 왜 사용자들은 generic 디자인을 받아들이는가 (수요 측)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평균 디자인이 모두에게 어색해야 한다면, 왜 사이트 빌더 템플릿은 시장에서 살아남는가?

사용자들이 거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암묵적으로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이 각자 명확한 취향을 가진 점들이라는 가정.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취향을 가지고 있다. 이건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느 정도 안다. "깔끔한 거 좋아해요", "따뜻한 느낌이요", "심플한 게 좋아요" - 이 정도까지는 명확하다.

그런데 그 취향의 해상도가 낮다. 얼마나 깔끔한지, 어떤 종류의 따뜻함인지, 어떤 차원에서 심플한지 -디테일은 비어 있다. 본인도 모른다.

그러므로 사용자가 새 디자인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은

-취향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비어 있는 디테일이 채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채움 자체가 도파민을 일으킨다.

"어, 이거 좋네" -> 사실은 처음 본 것에 대한 신선함인데, 본인은 내 취향을 발견했다고 해석한다.

사용자가 "이 디자인이 내 취향이다"라고 말할 때, 그게 진짜 사전적 취향의 발견이 아니라 후행적 합리화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 메커니즘이 generic 디자인이 살아남는 이유를 설명한다.

generic 디자인은 어디서 본 것 같다. 사용자는 그걸 처음 봐도 이미 본 적 있는 것 같은 친숙함을 느낀다. 그 친숙함이 안전함으로 번역된다. 그래서 사용자는 불만이 없다. 도파민은 약하지만, 거부감도 없다.

새로운 디자인은 정반대다. 강한 도파민을 일으키지만, 동시에 거부 위험도 있다. 사용자가 "이건 내 취향이 아니다"라고 이미 형성된 디테일에 부딪히면 거부한다.

그러므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디자인은 친숙한 것의 변형이다.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 아니라, 어디서 본 것 같은 형태에 약간의 차별화를 더한 것. 이게 사이트 빌더 템플릿의 정확한 공식이고, 더 넓게는 대부분의 상업 디자인의 공식이다.

이건 디자이너의 보수성이 아니라 사용자 인지의 관성에 대한 합리적 대응이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디자인은 관성적이다. 그리고 그 관성이 시장에서 작동하는 가장 안전한 디폴트다.

데이터는 분포를 보여주지만 선택을 해주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등장한다.

데이터는 분포를 보여줄 수 있다. A/B 테스트, 사용자 인터뷰, 히트맵, 세션 녹화. 이 도구들은 모두 분포를 측정하는 도구다. 어떤 사용자 그룹이 어디서 막히는지, 어떤 디자인을 더 빨리 이해하는지, 어떤 색상에 더 클릭하는지.

그런데 데이터는 어느 분포를 우선할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만약 디자인 A가 사용자의 60%를 만족시키고 디자인 B가 다른 40%를 만족시킨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데이터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데이터는 그저 두 디자인이 어떤 분포에 작동하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게다가 이 문제는 더 깊다. 사용자들이 자기 취향의 디테일을 모른다면, 그 디테일을 데이터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사용자 인터뷰에서 "이런 디자인이 좋아요"라고 답한 응답은, 사용자가 그 순간 떠올린 후행적 합리화일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는 사용자의 진짜 취향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측정 시점에 합리화한 답변을 측정한다.

선택은 가치 판단이다. 어떤 사용자를 우선하고, 어떤 사용자를 버릴지, 그리고 비어 있는 디테일을 어떻게 채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누군가가 해야 한다.

좋은 UX는 세그먼트를 버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UX 담론이 회피하는 사실이 있다. 좋은 UX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디자인이 아니라 어떤 세그먼트를 의식적으로 버리는 디자인이다.

Apple의 제품은 가격에 민감한 사용자를 명시적으로 버린다. Vimeo는 vlogger 시장을 YouTube에 양보하고 영화 제작자에 집중했다. Notion은 처음에 가벼운 노트 사용자를 버리고 power user에 집중했다 (지금은 다시 확장 중이지만). 좋은 제품은 항상 누군가를 버린다.

세그먼트를 버리지 않는 디자인은 결국 평균에 수렴한다. 그리고 평균은 누구에게도 정확히 맞지 않는다.

모두를 적당히 불만족시키는 디자인. 사이트 빌더 템플릿이 그렇고, 엔터프라이즈 SaaS UI가 그렇고, 정부 웹사이트가 그렇다.

세그먼트를 버리는 결정은 항상 정치적이다. 어떤 사용자가 더 가치 있는지, 어떤 사용자를 위해 다른 사용자의 경험을 희생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결정은 데이터로 위임될 수 없다. 누군가의 판단을 요구한다.

UX 분포는 지리적으로도 분리되어 있다

지금까지 글은 분포를 하나의 통계적 객체로 다뤘다. 그런데 사실 분포는 그것보다 더 복잡하다. 분포는 지리적으로 분리된 복수의 분포들이다.

이 차원이 들어오면 평균 디자인의 한계는 한 단계 더 깊어진다. 평균은 분산만 무시하는 게 아니라 어느 지역의 평균을 잡을지조차 결정해야 한다.

(중국 최대 정보 사이트 중 하나인 CSDN의 UI)

색상 의미는 문화 의존적이다

빨간색을 보자. 같은 색이 지역마다 분포의 다른 점에 위치한다.

중국 UI에서 빨간색은 행운, 번영, 축하의 신호다. 춘절 때 빨간 봉투, 결혼식의 빨간 의상, 재산을 부르는 색. 그래서 중국 e-commerce 사이트의 세일 배너, 포인트 적립 알림, CTA 버튼이 빨간색으로 가득하다.

사용자는 그것을 긍정적 자극으로 받아들인다.

서양 UI에서 빨간색은 정반대다. 위험, 경고, 오류. Stop sign, 빨간 경고 메시지, 삭제 버튼. 같은 빨간 CTA 버튼을 서양 사용자에게 보이면 공격적이거나 경고처럼 느껴진다.

같은 색이지만 분포의 어느 점에 있는지가 문화마다 정반대다. 글로벌 제품이 "빨간 버튼"을 디자인할 때, 어느 분포의 평균을 잡을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정보 밀도와 애니메이션의 비대칭도 존재한다.

(Linear의 홈페이지)

서양 SaaS - Linear, Notion, Stripe 의 디자인 언어는 미니멀 + 미세한 애니메이션이다. 정보를 정제하고, 여백을 두고, 인터랙션은 부드러운 transition으로 처리한다. 사용자는 정제된 정보 = 신뢰할 만한 제품이라는 신호로 읽는다.

(일본 라쿠텐의 홈페이지)

동아시아 e-commerce - Taobao, Rakuten, 쿠팡- 의 디자인 언어는 정반대다. 한 화면에 정보가 가득하고, 강한 색상이 충돌하고, 애니메이션은 자극적이다. 깜박이는 배너, 카운트다운 타이머, 빨간 가격표, 노란 할인 스티커. 사용자는 이것을 정보의 풍부함 = 신뢰할 만한 거래라는 신호로 읽는다.

같은 미니멀 디자인이 서양에서는 "신뢰"로, 동아시아에서는 "정보 부족"으로 읽힌다. 같은 고밀도 디자인이 동아시아에서는 "풍부함"으로, 서양에서는 "스팸"으로 읽힌다.

이건 디자이너의 취향 차이가 아니다. 사용자 인지가 다르게 훈련되어 있는 거다. 그리고 그 훈련은 수십 년의 e-commerce 환경, 광고 환경, 미디어 환경의 누적 결과다.

마이크로카피의 권력 신호

언어 차원도 무시할 수 없다.

영어 UI는 명령형이 자연스럽다. "Save", "Delete", "Submit", "Cancel". 화자-청자의 위계가 약한 언어이기 때문에, 명령형 동사가 중립적인 액션 라벨로 작동한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다르다. 같은 명령형이 위계 신호를 띤다. "저장", "삭제" 같은 명사형, 또는 "저장하기" 같은 -기 명사형으로 회피한다. 일본어 UI는 "保存する"보다 "保存" 명사형이 훨씬 흔하다.

글로벌로 의뢰를 받다보면 이런 경우가 흔하다.

이건 단순히 번역 문제가 아니다. 언어가 권력 관계를 어떻게 부호화하는가의 문제다. 영어는 화자-청자 위계가 약해서 명령형이 중립적이지만, 한국어/일본어는 위계가 강해서 명령형이 거의 항상 어떤 위계 신호를 띤다. UI가 명령형을 쓰면 시스템이 사용자보다 위에 있다는 신호가 된다.

그래서 같은 "Save" 버튼이 - 영어권에서는 중립적인 액션이고, 한국어권에서는 미묘하게 시스템이 사용자에게 명령하는 톤이 된다. 같은 디자인이 다른 언어권에서 다른 권력 신호를 보낸다.

(일본 야후)

메가플랫폼의 lock-in 효과

그런데 문화 본질주의로만 설명하면 부족하다. 한 가지 차원을 더 봐야 한다 - 메가플랫폼의 디자인 관성.

중국 UI가 비슷비슷한 이유는 중국 문화 때문만이 아니다. WeChat, Taobao, Alipay 같은 메가플랫폼이 디자인 언어를 굳혔기 때문이다. 후속 디자이너들은 그 언어를 따른다. 사용자가 이미 그 언어로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따르지 않으면 어색하기 때문이다.

일본 UI가 정보 밀도가 높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Yahoo Japan, Rakuten이 그 톤을 굳혔고, 후속 제품들이 그 톤에 맞췄다. 새로운 일본 SaaS가 미니멀 디자인으로 진입하면 "정보가 부족해 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평균은 메가플랫폼이 만든다.

한국도 똑같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이 한국 UI의 평균을 정의했고, 후속 제품들은 거기서 멀어지면 사용자에게 어색해 보인다.

그러므로 "문화별 UX"는 문화 본질 + 플랫폼 관성의 합작이다. 그리고 두 요소 모두 글로벌 제품에는 직접 측정되지 않는다. 글로벌 제품이 "평균을 잡는다"고 할 때, 어느 지역의 어느 플랫폼이 만든 어느 평균을 잡을지가 모호하다.

(왜 AI 회사 로고들은 똥꼬처럼 생겼을까?)

가장 가시적인 동시대 사례는 AI 회사 로고들이다. 레딧의 r/Design에 Why do AI company logos look like buttholes?라는 게시글이 있다. ChatGPT, Claude, Gemini, Copilot, Perplexity, Mistral

모두 원형 또는 방사형, 그라데이션, 수렴하는 것 같은 시각 문법을 공유한다. 디자이너들이 약속한 게 아니다. OpenAI가 시각 표준을 먼저 굳혔고, 후속 제품들은 거기서 벗어나면 AI 제품처럼 안 보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따른다. 어색함을 피하는 방식이 어색한 동질화를 만든다.

평균이 너무 굳으면 시장 안의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다. 빠져나오면 그 카테고리의 제품처럼 안 보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회로는 이미 평균에 정렬되어 있어서 평균 안에 있을 때는 어색함을 못 느낀다. 그러나 회로 밖의 사람이 보면 즉시 보인다. r/Design의 사용자가 "왜 다 똑같이 생겼지"라고 짚을 수 있는 이유다.

반대편 극단 - 자유의 디자인 실패

메가플랫폼 lock-in이 한 극단이라면, 반대편 극단이 존재한다 - 사용자에게 무한 자유를 주는 설계. 이 접근은 역사적으로 여러 번 시도되었고, 거의 항상 실패했다. 프로그래머의 시점에서는 이게 주소 공간 설계 문제로 보인다 — 제약이 제로인 시스템은 자유도가 무한이므로 의미있는 상태공간을 탐색할 수 없다.

Winamp 스킨 (1997-2000년대 초). Winamp는 사용자가 모든 시각 요소를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게 했다. 버튼 위치, 크기, 모양, 색상, 폰트 — 모든 게 자유였다. 결과적으로 수만 개의 스킨이 만들어졌지만 대부분이 사용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가독성이 부족하고, 클릭 영역이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었다. 자유는 증명되었지만 자유가 생산한 결과물은 대부분 보기 힘들었다.

MySpace 프로필 (2003-2008). 더 극단적인 사례다. 사용자가 자기 프로필 페이지에 임의의 HTML과 CSS를 삽입할 수 있었다. 자동 재생 음악, 깜박이는 GIF, 읽을 수 없는 텍스트 색상, 무한 스크롤 배경 이미지. 모든 페이지가 달랐으나 모든 페이지가 사용 불가능했다. 그리고 Facebook이 등장했을 때, Facebook이 이긴 결정적 이유는 디자인 자유를 완전히 막은 정반대 전략 때문이었다. 모든 Facebook 프로필은 똑같이 생겼고, 그게 편안함으로 작동했다. 사용자는 자신의 자유가 제거되었다는 것을 안도로 받아들였다.

이 사례들이 말하는 것은 한 가지다. 사용자에게 무한 자유를 주면 시스템 전체가 무너진다. 사용자는 자기 취향의 디테일을 채울 능력이 부족한데 - 앞서 짚은 사용자 취향의 해상도가 낮다는 제약

그 능력이 부족한 사용자에게 무한 자유를 주면, 결과물은 취향의 구현이 아니라 랜덤 노이즈의 출력이 된다.

디자이너에게 도화지는 무한하다.

하지만 프로그래머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한쪽은 메가플랫폼 lock-in — 평균이 너무 굳어서 모두 똑같아지는 실패.

다른 쪽은 Winamp/MySpace — 평균이 없어서 모두 다른 동시에 모두 사용 불가능한 실패.

그 사이 어딘가에 작동하는 작동하는 프로그램의 디자인이 존재한다. 현재의 Facebook, Reddit, Twitter - 모두 제약된 자유를 제공한다. 사용자가 콘텐츠는 채울 수 있지만 컨테이너의 시각 어휘는 플랫폼이 잠근다. 이 구조가 대규모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이유다.

프로그래머의 시점에서 이건 익숙한 패턴이다. 라이브러리 API 설계도 똑같은 문제다. 너무 제약이 강하면 사용자가 원하는 걸 못 만든다. 너무 자유로우면 사용자가 스스로 다친다. 좋은 API는 자주 하는 일은 쉽게, 잘못된 일은 어렵게 설계된다. 디자인도 같다. 좋은 디자인은 올바른 일을 재미있게, 잘못된 일을 어색하게 만든다.

인지는 훈련된다

먼저 이 명제부터 시작한다. 사용자의 감각 반응은 본성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동아시아 사람은 정보 밀도를 좋아한다"는 식의 본질주의로 떨어진다. 그건 틀렸다. 동아시아 사람도 1990년대 초반에 처음 본 야후 화면에서 정보 밀도가 높다고 느꼈을 거다. 지금 자연스럽게 느끼는 건 30년의 누적 노출 결과다.

같은 사람을 다른 환경에서 30년 키우면 다른 감각이 형성된다. 이건 광고 산업이 한 세기 동안 증명한 사실이고, 마케팅 연구의 기초 전제다. 그런데 UI 디자인 담론에서는 이상하게 자주 잊혀진다.

신뢰 신호의 두 가지 경로

사용자가 어떤 인터페이스를 만났을 때, 이 제품은 믿을 만한가를 판단하는 데는 보통 두 가지 경로가 작동한다.

경로 1 — 정제(refinement)의 신호. "이 제품은 잘 만들어졌다"는 판단을 디자인의 정제도에서 가져온다. 여백이 충분하고, 폰트가 일관되고, 인터랙션이 부드럽고, 시각적 충돌이 없을 때 사용자는 제작자가 충분한 자원을 투자했다고 추론한다. 그러므로 신뢰할 만하다.

경로 2 — 풍부함(abundance)의 신호. "이 제품은 잘 만들어졌다"는 판단을 디자인의 정보 밀도에서 가져온다. 한 화면에 정보가 많고, 옵션이 많고, 사용자 후기가 많고, 시각적 자극이 강할 때 사용자는 제작자가 충분히 노력했다고 추론한다. 그러므로 신뢰할 만하다.

두 경로 모두 합리적이다. 그리고 두 경로 모두 제작자의 투자라는 같은 변수를 측정하려고 한다. 다만 어느 변수에 가중치를 더 두는지가 다르다.

문제는 어느 경로가 활성화될지가 사용자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거다.

서양에서 정제가 신뢰 신호가 된 경로

서양 디자인 담론은 20세기 모더니즘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Bauhaus, Swiss Style, Dieter Rams의 "Less but better". 이 흐름의 핵심 명제는 —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능력이 디자이너의 능력이다.

이 명제가 광고와 매스미디어에 흡수되면서 서양 사용자는 다음과 같은 학습을 누적했다.

고급 = 정제됨. Vogue 표지의 여백, Apple의 흰 배경, Tiffany의 단순한 로고. 럭셔리 브랜드일수록 더 비우는 패턴.

저급 = 어수선함. 동네 슈퍼마켓 전단지의 노란색 가격표, 케이블 TV의 인포머셜, 스팸 메일. 신뢰할 수 없는 것일수록 더 채우는 패턴.

이 학습이 30-50년 누적되면 사용자의 감각은 정제 = 신뢰 회로를 굳힌다. 서양 SaaS가 미니멀로 가는 건 디자이너의 취향이 아니라, 그 시장의 사용자에게 신뢰 신호로 작동하는 게 미니멀이기 때문이다. Stripe, Linear, Notion이 다 비슷한 톤인 건 우연이 아니다. 그 톤이 그 시장에서 신뢰를 측정하는 측정자에 정렬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풍부함이 신뢰 신호가 된 경로

동아시아의 경로는 다르다.

전통 시장 문화. 한 가게에 물건이 많이 쌓여 있어야 장사가 잘 되는 가게다. 빈 매대는 물건이 안 팔려서가 아니라 못 팔아서 비어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 학습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따지기 어렵지만, 적어도 동아시아 시장 문화에서 밀도 = 활기 = 신뢰는 오래된 회로다.

신문 광고와 e-commerce. 일본의 1980년대 신문 광고를 보면 한 면에 정보가 가득하다. 작은 글씨로 모든 사양과 가격이 적혀 있다. 한국의 1990년대 e-commerce도 마찬가지였다. 옥션, 인터파크의 초기 화면. 모든 것이 한 화면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메가플랫폼이 결정타. Yahoo Japan이 2000년대 초반 일본 인터넷의 표준이 됐다. Yahoo Japan의 메인은 정보로 가득했다. 후속 일본 사이트들이 그 톤을 따랐다. 따르지 않으면 정보가 부족해 보였다. 일본 사용자는 30년 동안 고밀도 = 신뢰할 만한 사이트 회로를 강화해 왔다.

한국은 네이버. 중국은 Taobao와 WeChat. 모두 같은 메커니즘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 회로가 문화의 본질이 아니라 환경의 누적 결과라는 점이다. 일본 사용자도 1995년에는 야후 메인이 정보 과잉이라고 느꼈을지 모른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것이 디폴트가 됐을 뿐이다.

글로벌 제품의 딜레마

이 모든 걸 합치면 글로벌 제품의 진짜 딜레마가 보인다.

글로벌 제품은 어느 시장의 회로에 정렬할지 결정해야 한다. 모든 시장에 정렬하는 건 불가능하다. 빨간 CTA가 한 시장에서는 구매 유도이고 다른 시장에서는 경고가 되는 상황에서, 두 시장 모두 만족시키는 빨간 CTA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법은 세 가지다.

방법 1 - 한 회로를 선택하고 다른 회로를 포기한다. 가장 정직한 방법이다. Apple은 명시적으로 서양 미니멀 회로를 선택했고 동아시아 시장에서 e-commerce 적합성을 포기했다.

방법 2 - 시장별로 디자인을 분기한다. 가장 비싼 방법이다. 같은 제품의 일본 버전, 한국 버전, 서양 버전을 따로 만든다. McDonald's가 메뉴로 하는 일을 디자인으로 하는 거다. 자원이 충분한 회사는 가능하다.

방법 3 — 모든 회로의 평균을 잡는다. 가장 흔한 방법이고 가장 generic한 결과를 만든다. 서양에서도 동아시아에서도 그럭저럭 작동하지만 누구에게도 정확히 맞지 않는 디자인. 사이트 빌더 템플릿이 정확히 이 결과다.

세 방법 모두 어느 회로를 선택할지의 가치 판단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데이터로 위임될 수 없다. 데이터는 회로를 측정할 수 있어도 어느 회로를 우선할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여기서 OX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어느 회로를 우선할지 결정하는 사람이 owner다.

그 결정은 owner의 시장 이해, owner의 출신 배경, owner의 사업 야망에 달려 있다.

웹사이트는 세 주체의 타협이다

웹사이트는 사실 세 주체의 타협으로 만들어진다.

  • 사용자: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고 싶다.

  • 비즈니스: 브랜드 신뢰를 쌓고 전환을 만들어내고 싶다.

  • 내부 조직: 오너의 취향과 선호가 반영되기를 원한다.

흔히 "웹사이트는 사용자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정신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용자가 가진 "취향"은 결국 브랜드 평판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브랜드 평판은 어디서 오는가? 많은 경우, 오너의 취향과 포지셔닝, 그리고 그가 누적해온 의사결정에서 나온다.

SaaS 랜딩 페이지는 단순히 사용자가 정보를 얻는 장소가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자기 포지셔닝을 사용자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 현상은 본질적으로 principal-agent 문제다.

실제 클라이언트 작업을 해보면,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UX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OX — owner experience — 를 생각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대부분의 회사는 OX 기반으로 굴러간다.

이상적인 이야기에서는 모두가 UX를 신경 쓴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사업은 UX로 굴러가지 않는다. OX로 굴러간다. 핵심 질문은, 오너의 취향이 우연히 대중의 취향과 정되어 있는가다.

Gartner는 왜 팔리는가

Gartner 같은 회사의 보고서에 사람들이 큰 돈을 지불하는 이유가 뭘까?

그들이 하는 게임은 거의 동전 던지기에 가깝다. 외부에 공개되는 Gartner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틀린 경우가 적지 않다. 당연하다. 복잡계를 단순화하는 것은 항상 맞을 수가 없다. 경제는 복잡계다. 하지만 인간의 인지는 유한하다.

그런데도 왜 Gartner 같은 회사의 보고서가 팔리는가?

오너 또는 의사결정자의 불안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는 복잡하다. 나쁜 제품도 광고 하나로 성공할 수 있다. 과장 마케팅, 사기, 타이밍, 유통, 운 등등이 모든 것이 존재하고, 이 모든 것이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다. UX는 이상이다. 그러나 실무에서 개발자는 OX를 만족시켜야 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오너가 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회사가 오너의 이데올로기, 취향, 세계관의 실현에 더 가깝다.

그러면 무엇이 중요한가?

개발자에게 중요한 것은, 오너의 취향이 대중과, 그리고 타깃 고객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개발자가 오너에게 자주 아부하게 되는 이유도 이것이다 단순한 위계 때문이 아니라, 오너의 취향이 사실상 비즈니스의 운영 체제이기 때문이다.

단일 오너 가정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당연히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여러 stakeholder가 있는 회사는 어떻게 되는가? C-suite의 모든 사람이 비슷한 추론을 한다고 가정하지 않는 한, 이 모델은 일반화되지 않는 것 아닌가?"

좋은 지적이다. OX 프레임이 single-owner 모델처럼 보일 수 있지만, 메타 레벨에서는 분산된 stakeholder를 가진 회사에도 더 넓게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대략 세 가지 형태로 정리할 수 있다.

1. Safety-oriented OX

특정 stakeholder나 내부 정치 그룹이 결정적 우위를 가지지 못할 때, 결과는 종종 모두를 적당히 불만족시키고 적당히 만족시키는 UI가 된다.

이건 사용자를 위해 최적화된 게 아니다. 회사 내부의 누구도 그 결정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지지 않도록 최적화된 것이다.

이게 아마 많은 SaaS 제품에서 지배적인 패턴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걸 종종 "generic" 또는 "broadly applicable"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안정적이고 안전하고 반대하기 어렵지만, 날카롭게 타겟팅되지는 않은 디자인. SAP나 Oracle 제품이 이 형태의 순수한 사례다.

2. Faction-driven OX

C-suite에 여러 명이 있어도, 대부분의 결정은 한 파벌이 주도하고 그 파벌에는 보통 리더가 있다.

이 경우 UI는 그 파벌의 요구사항의 조합이 된다. 결과는 종종 페이지나 플로우마다 일관성 없는 요구사항으로 나타난다.

내 경험상, 이 싸움에서는 보통 기획/프로덕트 쪽이 이긴다. 마케팅 사이트는 CMO-OX로 최적화되고, 빌링 시스템은 CFO-OX로 최적화된다. 단일 OX가 아니라 도메인별로 분할된 다수의 OX가 작동하는 거다. Principal-agent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파편화된다.

3. Proxy-authority OX

내부에 강한 취향을 가진 owner가 없을 때, 회사는 외부에서 취향을 수입한다.

이게 정확히 Gartner가 팔리는 이유다.

McKinsey 덱이 사실상의 OX가 된다. 이사회가 가져온 "industry benchmark" 보고서가 OX가 된다.

결정은 더 이상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다. "proxy authority가 무엇을 말하는가?"가 된다.

이건 owner가 외주된 OX다.

한계

물론 이건 진지한 이론이 아니다. 관찰 기반 프레임일 뿐이고, 깨지는 케이스가 있다.

분산된 주주와 강한 경영진이 없는 후기 단계 상장 기업에서는 이 모델이 예측력을 잃는다. 다만 그런 회사에서도 내부 관습과 제도적 습관이 실제 의사결정 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진지한 이론으로 제시하는 건 아니다. 진짜 이론이라면 실제 데이터로 통계 모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Tweeter blue check)

X(트위터)라는 사례

X는 OX 이론의 거의 교과서적인 사례다. 그리고 흥미로운 건, X가 단순히 "OX가 망친 사례"가 아니라 OX의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이다.

OX가 UX를 이긴 명확한 사례들부터 보자.

블루 체크의 의미 전환이 가장 깔끔하다.

트위터 시절 블루 체크는 "이 사람이 사칭이 아니다"라는 검증 신호

순수한 UX 기능이었다. Musk는 이걸 월 8달러 구독 마크로 바꿨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신호가 노이즈로 변한 사건이다.

impersonation이 폭증했고 Eli Lilly 인슐린 무료 트윗으로 주가가 빠진 사건이 그 직후 일어났다. UX 분석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결정이다.

오직 "검증은 권위의 특권이 아니라 누구나 살 수 있어야 한다"는 Musk의 이데올로기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결정이다. 전형적인 OX 집행이다.

알고리즘에 자기 트윗 강제 노출도 같은 카테고리다. 2023년 2월 Super Bowl 트윗이 Biden 트윗보다 engagement가 낮자, 엔지니어들에게 자기 트윗을 알고리즘에서 1000배 부스트하게 시킨 사건. UX 관점에서는 명백한 손해다. 하지만 OX 관점에서는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플랫폼은 오너의 메가폰이니까.

이름을 X로 바꾼 것도 마찬가지다. "Twitter"는 20년간 누적된 브랜드 자산이었다. 동사로 쓰일 정도로. 마케팅 컨설턴트가 정상적으로 분석했다면 절대 못 버릴 자산이다. 하지만 Musk는 1999년 x.com 시절부터 X라는 이름에 집착해왔다. 이건 사용자 조사로 결정된 게 아니라 25년 묵은 오너의 취향이 실현된 거다. 1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비대칭이 생긴다.

Musk는 광고 매출이 50% 가까이 빠지고 가치평가가 440억 달러에서 100억 대로 추락하는 걸 감수하면서도 자기 OX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살아남았다. 이게 OX의 양면성이다.23

Musk의 OX 안에는 작지만 진짜인 UX 모델이 들어 있었다

"기존 트위터의 검열은 일부 사용자층에게 진짜 불만이었다"는 가설.

이 가설은 보편적 UX는 아니지만 특정 세그먼트의 UX였다. 그래서 광고주는 떠났지만 일부 사용자층은 더 활발해졌고, X는 좀비 상태로라도 굴러가고 있다. 만약 Musk의 OX가 순수한 자기만족이었다면

(예: "나는 핑크색을 좋아하니까 UI를 핑크로 만들겠다") 진작 망했을 것이다.

X 사례는 "OX vs UX 이분법"이 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확한 프레임은 이거다.

OX는 항상 어떤 UX 가설을 내장하고 있다. 문제는 그 가설이 얼마나 정확한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시장에 적용되는지다. Musk의 OX는 정확도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적용 시장이 좁았다. 그래서 X는 망하지도, 성장하지도 않는 회색 지대에 있다.

반면 Steve Jobs의 OX는 정확도도 높고 시장도 컸다. Bezos의 OX("고객 집착")는 OX 자체가 UX와 동형(isomorphic)이었다. 한국 SI 회사 사장들의 OX는 정확도가 낮고 시장도 사라지고 있다.

빠진 세 번째 옵션

여기까지 정리하면, 개발자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두 개로 보인다 - OX에 맞춰주거나 떠나거나.

그러나 빠진 세 번째 옵션이 있다. OX를 UX 방향으로 굽히는 작업.

좋은 컨설턴트, 좋은 PM, 좋은 시니어 개발자가 실제로 하는 일이 이것이다.

자기 OX를 공개해서 다른 사람들의 OX가 거기 일치되게 만든 것.

핵심은 "갈망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잘 의도된 디자인은 사용자에게 "내가 선택했다"는 착시를 유발한다.

이건 사용자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오너에게도 적용된다. 오너의 갈망은 보통 무엇인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잘 설계된 시스템은 오너에게도 그 감각을 준다.

다만 그 선택권은 완전한 자유가 아니어야 한다. 완전한 자유를 주면 시스템은 금방 무너진다. 일관성이 깨지고, 누구도 전체를 회복하지 못한다.

핵심 질문은 "오너가 선택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하면서도, 시스템이 망가지지 않게 할 경계는 어디인가?"이다.

이게 OX와 UX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단순히 OX에 맞춰주는 것도, 단순히 UX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라, OX의 갈망을 UX와 양립 가능한 형태로 재설계하는 것.

그것이 프로그래머가 가져야하는 자세이다.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각주

  1. https://www.theringer.com/2023/07/24/tech/twitter-x-new-name-elon-musk-logo-explainer
  2.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2024/jan/02/x-twitter-stock-falls-elon-musk
  3. https://www.reuters.com/technology/elon-musk-says-twitters-cash-flow-still-negative-ad-revenue-drops-2023-07-15/
프로그래머는 UX가 아닌 OX를 판다.